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프 하인케스 (문단 편집) == 여담 == * 평소에는 말끔한 얼굴이지만 경기 도중 기쁘거나 화나거나 흥분했을 때 얼굴이 붉어지는 것 때문에 '''오스람'''[* 독일의 '''전구'''회사이다. 백열등, 형광등, 할로겐등 같은 전구는 가리지 않고 만들며 치아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임플란트]]로도 유명하다.]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 2017년 복귀 이후 언론에서 자주 쓰이는 별명으로는 주로 하인케스 할배(Opa Heynckes)나 돈 유프(Don Jupp)로 불린다. Opa는 독일어로 할아버지를 뜻하는 애칭. Don은 스페인어로 [[한국어]]의 옹(翁) 정도 된다. 한국에서도 하인케스 옹이라고 불린다. * 은퇴 이후에도 [[파리 생제르맹 FC|파리 생제르맹]], [[맨체스터 시티 FC|맨체스터 시티]], [[레알 마드리드 CF|레알 마드리드]]에서 러브콜이 있었으나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다만 바이에른 뮌헨이 복귀 요청을 했을 때는 고심 끝에 결국 복귀를 결정했다. * 2012-13 시즌의 미칠 듯한 우승 행진으로 역사상 7번째로 [[트레블]]을 달성한 감독이 되었다. 또한 역사상 4번째로 다른 두 팀에서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한 감독이 되었다. 그런데 4명의 감독 중 빅 이어를 들어올린 때의 시간 간격이 가장 긴데, 무려 15년이다. * 2012-13 시즌이 끝나고 뮌헨을 떠나면서 전 세계의 수많은 클럽들과 국가대표팀 감독직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레알 마드리드 감독설이 가장 알려져 있었지만 본인은 끝내 은퇴를 선택하였다. 참고로 이 당시 대한민국 축구 팬들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이분이 오셨으면 한다는 팬들이 엄청 많았다. 이 당시 대한민국 국대 상황이 최악의 암흑기였다. 물론 하인케스와 그 사단의 연봉을 KFA가 감당할 수 있을리 없으니 애초에 불가능한 얘기. * 은퇴 후 2013년 [[FIFA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여담으로 2013년 감독상 최종 3인(유프 하인케스, [[위르겐 클롭]], [[알렉스 퍼거슨]])은 2012 최종 3인([[비센테 델보스케]], [[주제 무리뉴]], [[펩 과르디올라]])과 단 한 명도 겹치지 않는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과르디올라는 감독직을 사퇴하여 쉬고 있었고, 무리뉴의 레알은 무관이었으며, 델보스케의 스페인 국대는 컨페드컵 결승에서 너무나도 허무하게 털렸다. * 많은 바이에른 팬들에게는 '[[펩 과르디올라]]가 안 오고 하인케스가 바이에른 감독을 연임했다면 어땠을까'는 만년 이야기거리이자 한탄소재이기도 하다.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 스페인 클럽에 강했던 하인케스의 바이에른에 비해 펩의 바이에른은 스페인 클럽에게 연달아 탈락하며 약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 특히나 스페인 클럽에게 3연속으로, 그것도 각기 다른 세 클럽에게 돌아가며 털렸다는 것 자체가 단순 성적 이상으로 팬들에게 자존심의 상처를 줬다. 그 외에도 구단의 스쿼드 자체가 하인케스식 축구에 맞게 완성되어 있었는데 펩이 부임하면서 이를 극대화하지 못하고 구단의 황금기를 보내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레바뮌]]으로 불리는 2010년대 유럽 축구 3대장의 전성기를 살펴보면 유독 바이에른만 전성기가 시작될 시점에 감독 교체를 겪은 것을 알 수 있다. 펩의 바르셀로나가 4년, 지단의 레알이 3년인 데 비해 하인케스의 바이에른만 2년으로 그 기간이 짧다. 특히나 각 구단의 황금기 멤버의 전성기를 위의 감독들과 함께한 두 팀과는 달리 바이에른은 하인케스 감독 하에서 제대로 성적을 낸게 1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를 반영하듯 슬슬 레바뮌 시대가 저물어가는 지금에는 세 팀의 챔피언스 리그 성적을 보면 바르셀로나가 우승 3회, 레알이 4회인 데 반해 바이에른은 2회이다. 그 예시로 [[마리오 만주키치]]와 [[하비 마르티네스]]는 하인케스 아래서 엄청난 폼을 보여줬지만 펩과는 맞지 않아 이적을 하거나 맞지 않는 옷을 입어야 했다. 특히 하비 마르티네스는 트레블 시즌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와 함께 볼란치 롤에서 엄청난 폼을 보여줬으나, 펩이 추구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롤에는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센터백으로 포지션 변화를 하였고 하인케스가 복귀하기 전까지 수비형 미드필더의 재능을 썩히게 된다. 물론 센터백으로서도 실력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트레블 시즌과 하인케스 복귀 이후에 보여준 폼을 생각해보면 정말 아쉬울 따름이다. * [[Elo 레이팅]] 기준으로 역사상 [[FC 바르셀로나|바르셀로나]]를 가장 잘 잡았던 감독 중 하나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Elo 레이팅을 68.2점이나 빼앗아 왔다. 역사상 바르셀로나 상대로 Elo 레이팅을 가장 많이 빼앗아 온 [[하비에르 이루레타]]가 32경기를 붙고 85.6점을 빼앗아왔는데, 하인케스는 고작 16경기를 치르고 저 레이팅을 빼앗아온 것.[* 물론 두 경기를 치르고 무려 50점이나 빼앗아 온 [[발레리 로바노브스키]]도 있기는 하다.] 참고로 12-13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 바르셀로나 전을 앞두고 "바르셀로나의 철학, 시스템, 전술, 유소년 육성 등을 오랫동안 관찰해왔고 파악해두었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는데 이후 바르셀로나는 뮌헨에게 1, 2차전 모두 힘도 못 쓰고 광탈한다. * 감독으로서 참여한 네 번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중 2017-18 시즌을 제외한 3시즌을 결승전에 도달했다. 결과는 두 번의 우승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지낸 97-98, 바이에른 뮌헨에서 지낸 12-13 시즌.] 1번의 준우승.[* 바이에른 뮌헨에서 지낸 11-12 시즌.] 물론 결승전에 도달하지 못했던 2017-18 시즌[* [[레알 마드리드 CF|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해서 탈락했다.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을 간신히 꺾고 결승에 진출한 레알 마드리드가 [[리버풀 FC|리버풀]]에 3 대 1로 이기면서 챔스 3연패에 성공했다. 바이에른에겐 운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도 준결승까지는 진출한지라 못해도 준결승은 기본으로 갔다. 유러피언컵 시절을 포함하면 8강이 최저 성적.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08f945d5-c900-42c0-b5b4-3ae28b8d6638.jpeg.jpg|width=100%]]}}}|| * 바이에른 뮌헨 시절에는 [[프랑크 리베리]] 때문에 열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인에게 리베리와 [[아르연 로번]]은 다루기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는데, 부인이 한 말이 '''"당신 선수 때는 더했어요!"'''였다고 한다. [[https://www.fmkorea.com/1852855145|#]] * 윗 문단에 적힌 리베리에게 화를 냈던 상황은 11/12 시즌 보훔과의 포칼 16강전이였는데 경기종료 직전 프리킥 상황에서 리베리가 차고 싶어했지만 하인케스는 [[토니 크로스]]에게 차라고 지시했고 벽에 막혔지만 혈투끝에 추가시간에 골을 넣으면서 2대1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리베리는 굉장히 화가 났고 궁시렁거리며 돌아다녔으며 이를 본 하인케스는 인내심이 바닥이 나 리베리에게 소리를 치며 화를 냈다고 한다. 이때 [[마리오 고메즈]]는 "감독님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프랑크는 일년에 한두번씩 이럴때가 있어요.."라고 말하며 하인케스를 진정시켰고 겨울 휴식기에 들어가기 전까지 리베리와 냉전상태였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연휴기간에 리베리의 절친인 [[다니엘 반 바이텐]]이 하인케스에게 리베리가 하인케스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전화를 드렸으나 리베리는 하인케스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하인케스 역시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후반기 2라운드를 앞두고 부주장이였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감독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프랑크와 대화를 해주세요!"라고 설득했고 리베리를 사무실로 불렀으며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대화가 끝나고 리베리는 하인케스에게 "고맙습니다 감독님, 내일 경기에서 잘하겠습니다."라고 말했고 다음날 리베리는 볼프스부르크전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하인케스에 의하면 경기가 끝난 후 리베리에게 화를 냈던 당시 보훔과의 포칼 경기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74226558_3012549995425083_3652634462774099968_n.jpg|width=100%]]}}}|| * 털이 아주 북실북실한 [[저먼 셰퍼드]]를 키우고 있었다. 이름은 칸도. [[https://www.welt.de/img/sport/mobile170508678/4592504107-ci102l-w1024/FC-Bayern-Muenchen-Trainer-Jupp-Heynckes-7.jpg|#]] 바이에른 팬들 사이에서는 하인케스가 2017-18 시즌에 감독으로 복귀했을 때 한 당시 인터뷰 때문에 하인케스를 바이에른으로 복귀시킨 레전드로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 11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무려 14살까지 살았는데, 하인케스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았다고 했다. * 2019-20 시즌 [[니코 코바치]]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바이에른 감독직에서 사임하자 후임으로 수석 코치 [[한지 플릭]]을 추천하였다고 한다.[* 한지 플릭은 선수 시절에 바이에른 뮌헨에서 잠깐 뛰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감독이 하인케스였다.] 그리고 그 추천은 적중해 플릭 휘하의 바이에른은 2020년에 한 경기를 제외하고는[* 그마저도 진 게 아니라 [[RB 라이프치히]]와 0:0으로 비긴 것이다.] '''모든 경기에서 전승을 거두며 분데스리가 우승을 확정지었고, 내친 김에 포칼까지 우승하며 마지막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를 [[전승 우승]]하면서 트레블을 거머쥐었다.''' 재미있는 건 플릭과 하인케스의 전술 스타일이 상당히 유사하다. * [[한지 플릭]]의 감독대행 첫 경기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전이었는데, 이때 플릭은 많이 긴장했고 하인케스가 통화를 걸어 안심을 시켰다고 한다. 하인케스는 "걱정하지 마라. 너는 3:0 또는 4:0으로 이길 거다. 나는 내 바이언을 안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실제로 바이에른은 다음 날 도르트문트전에서 4-0 대승을 거두었다.]]''' [[https://twitter.com/iMiaSanMia/status/1297994732296167425?s=20|출처]] * 영어를 잘하고 라리가에서 감독을 했던 경험으로 스페인어에도 능통하다. 트레블 시즌 때 영입한 [[하비 마르티네스]]는 독일어를 하나도 몰랐으나 하인케스가 하비의 적응을 도와주었고 하비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며 트레블의 1등 공신이 되었다. 17-18 시즌 안첼로티의 경질 후 소방수로 투입되었을 때 당시 임대로 온 [[하메스 로드리게스]]는 독일어에 미숙했지만 하인케스가 스페인어에 능통했기에 하메스에게 지시할 때 스페인어로 말하는 등 하메스는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고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당시 하메스의 활약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하인케스가 하메스의 은사인 안첼로티보다 하메스를 더 잘 활용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 하인케스 사단의 대부이자 오른팔로 평가받는 수석 코치 [[페터 헤르만]]이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이야기를 밝혔다. 당시 바이언은 [[카타르]] [[도하]]에서 동계 훈련 캠프 중이었는데 헤르만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고 헤르만은 하루 전에 독일로 먼저 떠났다. 헤르만은 장례식에 도착하고 매우 놀랐는데 어머니 무덤 앞에는 하인케스가 먼저 와서 서 있었다고 한다. 헤르만의 인터뷰에 의하면 당시 장례식은 베스터발트주에서 치렀고 카타르에서 뮌헨을 경유하여 쾰른까지 비행기를 타야 하고 그 후 택시를 타서 더 멀리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오기 쉬운 곳이 아니었고 고령의 하인케스가 온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헤르만은 당시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으며 그의 위대한 인간성에 존경을 표했다. 실제로 하인케스 감독이 은퇴했을 때, 선수들로 부터 그의 인간성에 대한 존경의 표시가 많았으며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얘기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 2019년 프랑스 풋볼에서 발표한 올타임 감독 랭킹에서 25위에 랭크되었다. [[https://www.francefootball.fr/magazine/?prov=W-HP-LBMU|#]] * 키커에 의하면 2022년 11월 응급 심장수술을 받았으며 2주간 집중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현재는 더 나아졌고, 회복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인케스는 인터뷰에서 내 인생에서 최악의 시간이였다고 밝혔다. [각주] [[분류:1945년 출생]][[분류:1963년 데뷔]][[분류:1978년 은퇴]][[분류:묀헨글라트바흐 출신 인물]][[분류:독일의 축구선수]][[분류:독일의 축구감독]][[분류: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은퇴, 이적]][[분류:하노버 96/은퇴, 이적]][[분류: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역대 감독]][[분류:FC 바이에른 뮌헨/역대 감독]][[분류:아틀레틱 클루브/역대 감독]][[분류: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역대 감독]][[분류:CD 테네리페/역대 감독]][[분류:레알 마드리드 CF/역대 감독]][[분류:SL 벤피카/역대 감독]][[분류:FC 샬케 04/역대 감독]][[분류:바이어 04 레버쿠젠/역대 감독]][[분류:UEFA 챔피언스 리그 다회 우승 감독]][[분류: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감독]][[분류:독일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74 FIFA 월드컵 서독 참가 선수]][[분류:독일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참가 선수]][[분류:UEFA 유로 1972 참가 선수]][[분류:공격수]][[분류:스트라이커]][[분류:축구감독]]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